꽤 오랜 시간 동안 여러가지 공부를 해왔지만, 결국 세무사도 포기했고 데이터 사이언스로도 진로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뭔가를 도전하기엔 힘도 의욕도 없었다.
글을 올리지 않은 동안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사건을 고르라 한다면 내가 조현병에 걸렸다는 사실이다.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 날 찾아와서 우리 가족을 공격할거라는 피해망상이 시작되더니, 끝내는 우리 가족이 전부 악마에 씌었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사도신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교회도 나가지 않던 내가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외웠으며 나를 해치려는 환청과 모욕하는 환청, 도우려는 환청과 기만하는 환청. 쉬지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윽박지르는 환청도 들었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혼란스러운 환각과 환청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해 약 1달간을 거의 잠을 자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이상을 느낀 부모님의 설득에 의해 병원에 가게 되었다. 그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조현병 환자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공격성이 증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상하다며 병원에 가자는 어머니를 거의 때릴 뻔했다. 다행히 실낱같이 남아있는 이성이 그러지 않게 했던 것 같다. 만약 정말 때렸다면 평생 후회했을 것 같다. 외할머니까지 찾아오셔서 설득한 후에야 간신히 스스로가 이상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병원에 가게 되었다.
다행히도 조현병은 약을 먹는다면 빠르게 이성이 돌아오는 병이었다. 세간의 인식과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병으로 인해 뇌기능 자체가 저하되어버리기 때문에 여러가지 증상들이 나타나기는 했다. 약을 먹는 동안 죽은 동생이 내 몸에 들어와 대화하고 인사를 하고 떠난다거나 하는 걸 경험했다. 환청의 연장선이겠지만 이 사건이 동생을 마음 속에서 놓아주는데에 큰 도움이 되기는 했다. 내가 정신적으로 취약해진 가장 큰 이유가 동생의 죽음이었기 때문에 이 이후로는 오히려 정신적으로 건강해진 것 같다. 다만 약은 계속 먹었고, 지금도 먹고 있다. 조현병 약은 절대 스스로의 판단으로 끊어서는 안된다.
떨어진 인지능력 때문인지, 아니면 하도 여러가지 일들을 겪게 되서인지는 몰라도 한동안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박살난 채로 살았다. 1년 정도를 그냥 쉬었던 것 같다. 친구들도 만나고 했지만 박살난 믿음은 돌아오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시간 보내는 데에만 썼다. 그러면서도 너무 답답했다.
결국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취업을 시도했다. 그동안 세무사 공부만 하느라 이뤄놓은게 없으니 당연히 이력서를 넣어도 어떤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조금 무모한 시도이기는 했다. 뇌기능이 저하되었다는 걸 스스로도 느낄 정도로 머리 속에 안개가 낀 듯 했고, 인내심도 끈기도 바닥 났으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 세상과 사람이 한없이 무섭고 두려웠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라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이력서를 계속 넣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가 아시는 사장님이나 세무사 분들께 면접이라도 봐달라고 사정하고 다니신 것 같다. 아직 멀쩡하지 않은 상태로 인적성 검사도 보고 면접도 보고 다녔다. 인적성 검사는 특히 처참했다. 한계를 느끼고 특히 절망했던 것 같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고 정말 크게 실망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주선해주신 세무사 사무소 중 한 곳에 면접을 보고 취업하게 되었다. 면접 볼 때 최대한 멀쩡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 덕분인지 아니면 아버지 덕분인지는 몰라도 간단한 업무도 하기 어려워하는 상태에서 세무사 사무소 신입기장직원으로 갑작스래 취업하게 되었다. 이제 4개월 정도 되었는데, 처음에는 기장 업무도 아닌 간단한 서류 업무도 습득하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하루에 하나씩만 알려달라고 부탁했던 것 같다. 내 사정을 얘기하지 않았기에 알려주는 사람이 당황스러워 했지만 정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훨씬 더 복잡한 생각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세금 관련 업무도 간단한 것들은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세무사는 포기했지만 세무사무소 기장직원은 될 수 있었다. 함께 일하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세무사 분들을 보면 부럽고 질투날 때도 있긴 하다. 근데 과한 욕심은 내지 않고 있다. 나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소개로 반쯤 억지로 들어왔기에 금전적인 보상은 그렇게 크지 않다. 거기에 대한 불만은 없는 편이다. 돈 보다는 나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집중하고 있는 것은 맡은 업무만이라도 잘 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더 적어보겠다. 이미 한참 적은 것 같지만 말이다.
나를 제외한 누군가는 원하는 꿈을 꼭 이루기 바란다. 누군가는 현실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성공하길 바란다. 나는 이제 현실에 순응할 때 인 것 같다.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 스스로가 충분하다고 느껴진다면 다시 한 번 도전해볼 생각이긴 하다. 그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