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가슴을 치며 우는 누군가의 가족들, 혹은 그저 처연히 눈물을 훔치는 가족들, 그런 가족들을 보며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뉴스를 보며 아버지께서는 한숨을 쉬며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어휴,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최근 몇 년간만큼 이 문장이 우리 가족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 적이 없었을 겁니다. 현재 우리 가족, 나의 동생은 돌아오지 못할 영원한 여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동생이 유잉육종이라는 들어본 적도 없는 희귀암이 생겨났다는 것을 처음 들었을 당시, 물론 충격적이었지만 나을 수 있으리라 예상했습니다. 워낙 운 좋게 초기에 발견되었으며, 현대의 대부분의 암은 초기에 발견된다면 향후 재발이 되는지 지속적인 감시는 필요하지만 완치는 거의 된다고 그렇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동생이 완치 판정을 받고 집에 돌아왔을 때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항암으로 힘들어하는 동생을 위해 맛있는 것을 사다 주고, 함께 놀고, 얘기하고. 그저 평범하게 대해주며 지내면 동생이 얼마 안가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동생이 몇 개월 뒤 재발 판정을 받고 다시 입원했을 때, 그 다음에도, 그리고 4번째 재발로 입원했을 때에도. 독한 항암제로 온 몸이 붓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동생을 보았을 때에도, 코로나19로 인해 동생을 보러 가지 못할 때에도, 때때로 정말로 동생이 우리 가족을 떠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견딜 수 없는 불안이 저를 찾아올 때에도, 저는 희망적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찾아올 기적을 믿었습니다.
4번째 재발 이후, 동생은 더 이상 완치라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유잉육종이라는 것이 왜 희귀암인지, 암이 항암제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고, 뇌경색으로 몸이 마비되고, 다발성 전이가 발견되고, 종국에 뇌로 전이되었을 때. 그리고 더 이상 치료할 수단이 없다는 이야기를 의사에게 얼마 전에 들었을 때. 제 마음 속에 간신히 그려 나가던 미래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희망은 나에게 어떠한 좋은 미래가 찾아오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입니다. 그 미래를 위해 힘든 오늘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마음 속에 품은 의지입니다. 그리고 제 마음 속에서 6년 만에 처음으로 그 의지가 완전히 소멸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이상의 어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는 말이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은 제대로 먹지도 못 한 채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피곤해서 자고 싶고, 그리고 함께 고통을 나누지는 못할 망정 정작 나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이 상황을. 그것이 잘못된 욕구가 아님을 나에게 알려주고, 당신에게도 알려주는. 그러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문장이었음을. 당신이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살아달라는 부탁이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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