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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느날 갑자기 세무사가 되고 싶어졌다. 2 2021.05.03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2021. 7. 11. 17:01 - MunJunHyeok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가슴을 치며 우는 누군가의 가족들, 혹은 그저 처연히 눈물을 훔치는 가족들, 그런 가족들을 보며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뉴스를 보며 아버지께서는 한숨을 쉬며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어휴,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최근 몇 년간만큼 이 문장이 우리 가족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 적이 없었을 겁니다. 현재 우리 가족, 나의 동생은 돌아오지 못할 영원한 여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동생이 유잉육종이라는 들어본 적도 없는 희귀암이 생겨났다는 것을 처음 들었을 당시, 물론 충격적이었지만 나을 수 있으리라 예상했습니다. 워낙 운 좋게 초기에 발견되었으며, 현대의 대부분의 암은 초기에 발견된다면 향후 재발이 되는지 지속적인 감시는 필요하지만 완치는 거의 된다고 그렇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동생이 완치 판정을 받고 집에 돌아왔을 때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항암으로 힘들어하는 동생을 위해 맛있는 것을 사다 주고, 함께 놀고, 얘기하고. 그저 평범하게 대해주며 지내면 동생이 얼마 안가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동생이 몇 개월 뒤 재발 판정을 받고 다시 입원했을 때, 그 다음에도, 그리고 4번째 재발로 입원했을 때에도. 독한 항암제로 온 몸이 붓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동생을 보았을 때에도, 코로나19로 인해 동생을 보러 가지 못할 때에도, 때때로 정말로 동생이 우리 가족을 떠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견딜 수 없는 불안이 저를 찾아올 때에도, 저는 희망적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찾아올 기적을 믿었습니다.

 

 4번째 재발 이후, 동생은 더 이상 완치라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유잉육종이라는 것이 왜 희귀암인지, 암이 항암제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고, 뇌경색으로 몸이 마비되고, 다발성 전이가 발견되고, 종국에 뇌로 전이되었을 때. 그리고 더 이상 치료할 수단이 없다는 이야기를 의사에게 얼마 전에 들었을 때. 제 마음 속에 간신히 그려 나가던 미래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희망은 나에게 어떠한 좋은 미래가 찾아오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입니다. 그 미래를 위해 힘든 오늘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마음 속에 품은 의지입니다. 그리고 제 마음 속에서 6년 만에 처음으로 그 의지가 완전히 소멸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이상의 어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는 말이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은 제대로 먹지도 못 한 채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피곤해서 자고 싶고, 그리고 함께 고통을 나누지는 못할 망정 정작 나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이 상황을. 그것이 잘못된 욕구가 아님을 나에게 알려주고, 당신에게도 알려주는. 그러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문장이었음을. 당신이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살아달라는 부탁이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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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하늘에서 계시라도 받은 것 처럼, 세무사가 되고 싶어졌다.

 

 현역으로 입대하려고 한 그 해에 디스크가 터져서 갑작스래 신체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아버렸다. 그 다음해에는 23세의 나이에 이미 10년 정도 방치된 수준으로 악화된 통풍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알아보니 통풍은 신체등급 4급이 안나온단다. 나는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뛰지도 못하는데.. 그래서 이미 4급 판정을 받은게 어찌보면 다행인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문제는 22세에 입대해서 24세 부터 내 미래를 준비하려 했던 내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사회복무요원은 신청을 해도 못가는 경우가 허다했고 그렇게 대학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그래도 학점을 최대한 올리기 위해서 정신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공부는 꽤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23세가 되어버렸다. 그 해 겨우겨우 TO가 생겨서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복무 시작은 24세 9월. 이후 재지정을 받고 다른 근무지로 옮겼지만 어쨌든 나는 현재 25세가 되었다.

 

 복무일이 다가오니 그동안 계획이 꼬여 혼란스러워하며, 포기하며 살던 나도 뭔가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점은 3.25로 낮은 편이고(1학년 학점은 2.8이었다.) 어떤 대회나 자격증 스펙 같은 것도 전혀 준비되지 않은 내가. 21개월 간의 복무를 끝내고 26세가 되었을 때. 나는 뭘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을 알아보니 이 학점과 스펙으로 날 뽑아주기나 할련지 확신이 없었다.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내가 닿을 수도 없는 곳에서 날고 기는 사람들일테고, 그런 사람들조차 못들어가서 떨어지는 곳인데 말이다.

 데이터사이언스라는걸 핥다못해 접시 위에 올려두고 쳐다만 봤던 사람이 이런 곳에 들어갈 수 있을리가 없다는 판단이 섰다. 하지만 나는 배짱만 두둑한 인간이라 일단 나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은 있는 편이다. 그래서 그것을 증명할 수단이 있다면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수단을 생각하던 중, 갑자기 세무사가 생각이 났다.

 

 보통 경제학과 학생들은 CPA 시험을 준비한다. 그런데 CTA가 갑자기 생각이 난 이유는 무엇일지 잠시 생각해봤다. 나의 무의식 어딘가에서 나의 이 데이터사이언스를 향한 갈망과 세무쪽을 어떻게 연결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렇게 되면 데이터사이언티스트라기보단 핀테크 전문가라고 해야하겠지만 말이다. 어차피 내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에 진입하는 것이 힘들다면 세무사라도 따서 먹고 살아야할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결론은 현재는 사회복무요원 복무 중에 직장인 대상으로 운영하는 세무사 자격증 학원을 다니고 있다. 물론 사회복무요원 일이 현역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내 몸 상태나 집안/주변 상황이 워낙 좋지 않은데다가 여러가지 스트레스 받을 일도 많고 하니 역시 힘들기는 하다. 매주 토요일마다 11시간 가량 학원에서 붙어있는 것도 근무 중에 정말 짬이란 짬은 다 짜내서 공부 찔끔찔끔하는 것도 내 정신적인 한계를 다 끌어낸다는 느낌이 강하다. 근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런 상황이기에 포기하지 않고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6년간 투병을 지켜봐온 가족의 죽음이 턱 앞에 와있고, 내 의무나 책임이 나를 짓누르는 이런 상황이기에. 죽고 싶어도 죽지는 못하고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넋두리가 되었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이 곳을 방치할 수 밖에 없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에 대한 변명을 적어보았다. 내 상황에 대해서도 조금 정리하고 다시 마음을 잡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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