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세무사가 되고 싶어졌다.
마치 하늘에서 계시라도 받은 것 처럼, 세무사가 되고 싶어졌다.
현역으로 입대하려고 한 그 해에 디스크가 터져서 갑작스래 신체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아버렸다. 그 다음해에는 23세의 나이에 이미 10년 정도 방치된 수준으로 악화된 통풍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알아보니 통풍은 신체등급 4급이 안나온단다. 나는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뛰지도 못하는데.. 그래서 이미 4급 판정을 받은게 어찌보면 다행인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문제는 22세에 입대해서 24세 부터 내 미래를 준비하려 했던 내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사회복무요원은 신청을 해도 못가는 경우가 허다했고 그렇게 대학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그래도 학점을 최대한 올리기 위해서 정신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공부는 꽤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23세가 되어버렸다. 그 해 겨우겨우 TO가 생겨서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복무 시작은 24세 9월. 이후 재지정을 받고 다른 근무지로 옮겼지만 어쨌든 나는 현재 25세가 되었다.
복무일이 다가오니 그동안 계획이 꼬여 혼란스러워하며, 포기하며 살던 나도 뭔가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점은 3.25로 낮은 편이고(1학년 학점은 2.8이었다.) 어떤 대회나 자격증 스펙 같은 것도 전혀 준비되지 않은 내가. 21개월 간의 복무를 끝내고 26세가 되었을 때. 나는 뭘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을 알아보니 이 학점과 스펙으로 날 뽑아주기나 할련지 확신이 없었다.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내가 닿을 수도 없는 곳에서 날고 기는 사람들일테고, 그런 사람들조차 못들어가서 떨어지는 곳인데 말이다.
데이터사이언스라는걸 핥다못해 접시 위에 올려두고 쳐다만 봤던 사람이 이런 곳에 들어갈 수 있을리가 없다는 판단이 섰다. 하지만 나는 배짱만 두둑한 인간이라 일단 나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은 있는 편이다. 그래서 그것을 증명할 수단이 있다면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수단을 생각하던 중, 갑자기 세무사가 생각이 났다.
보통 경제학과 학생들은 CPA 시험을 준비한다. 그런데 CTA가 갑자기 생각이 난 이유는 무엇일지 잠시 생각해봤다. 나의 무의식 어딘가에서 나의 이 데이터사이언스를 향한 갈망과 세무쪽을 어떻게 연결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렇게 되면 데이터사이언티스트라기보단 핀테크 전문가라고 해야하겠지만 말이다. 어차피 내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에 진입하는 것이 힘들다면 세무사라도 따서 먹고 살아야할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결론은 현재는 사회복무요원 복무 중에 직장인 대상으로 운영하는 세무사 자격증 학원을 다니고 있다. 물론 사회복무요원 일이 현역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내 몸 상태나 집안/주변 상황이 워낙 좋지 않은데다가 여러가지 스트레스 받을 일도 많고 하니 역시 힘들기는 하다. 매주 토요일마다 11시간 가량 학원에서 붙어있는 것도 근무 중에 정말 짬이란 짬은 다 짜내서 공부 찔끔찔끔하는 것도 내 정신적인 한계를 다 끌어낸다는 느낌이 강하다. 근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런 상황이기에 포기하지 않고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6년간 투병을 지켜봐온 가족의 죽음이 턱 앞에 와있고, 내 의무나 책임이 나를 짓누르는 이런 상황이기에. 죽고 싶어도 죽지는 못하고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넋두리가 되었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이 곳을 방치할 수 밖에 없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에 대한 변명을 적어보았다. 내 상황에 대해서도 조금 정리하고 다시 마음을 잡을 수 있도록.